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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성북동 비둘기_김광섭(작품해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시구 풀이

1. 번지가 새로~ 번지가 없어졌다

  :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산골짜기에까지 집을 짓고 살게 되자 점차 비둘기(자연)가 살 자리가 좁아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새로 생긴 '번지'는 인간의 삶의 영역(문명)을 의미하고, 없어진 '번지'는 비둘기의 보금자리(자연)를 의미합니다.

2. 돌 깨는~ 금이 갔다.

  :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됨으로써 비둘기가 지금까지 누려 온 평화가 깨어진 데 대한 아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돌 깨는 산울림'은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를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 비둘기는 금방 따낸 돌에 부리를 문지르며, 파괴되기 전의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금방 따낸 돌 온기'는 발파 작업 때 생긴 열로 돌이 따뜻해진 것을 뜻합니다.

 4. 사랑과 평화의~새가 되었다.

  : 자연의 파괴로 인해 비둘기가 이제는 더 이상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급격한 산업화, 도시화)이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까지도 잃어버린 인간의 황폐한 모습을 비둘기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 작품 해설

 19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비둘기는 사랑과 평화, 축복의 메시지 전달자라는 일반적 상징을 뛰어넘어 근대화, 공업화로 소외되어 버린 현대인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그에 대한 관찰자 내지 비판자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서 '비둘기'는 보금자리를 잃고 쫓기는 새입니다. 이 새가 왜 이렇게 쫓기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명료해집니다. 비둘기는 사람들에 의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거주를 위해 '사랑과 평화'의 새인 비둘기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자연을 파괴합니다. 비둘기도 그 희생자인 것입니다. 쫓겨난 비둘기는 '채석장 포성', 즉 자연을 파괴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과 위압에 떨며, 다만 옛날을 그리워할 뿐입니다. 쫓겨난 비둘기는 그냥 새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평화'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대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고 사랑과 평화 같은 인간성마저 거세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이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망치게 한다고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 '비둘기'의 상징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근대화, 산업화는 우리 주변의 자연들을 함부로 파괴하고 훼손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해한다면, 이 시의 '비둘기'는 개발만을 앞세우는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고 훼손되어 가는 자연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시를 재개발한다는 명분으로 산동네를 철거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비둘기'는 도시의 변두리에 사는 소외 계층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비둘기'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어딘가로 또 떠밀려 가야 하는 철거민의 아픔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표현상의 특징

  이 시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상처받은 비둘기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인간의 자연 파괴를 '돌 깨는 산울림', '채석상 포성' 등 청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대조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비둘기'를 마치 감정을 지닌 사람처럼 표현하여 개발로 인한 자연과 인간의 고통을 말함으로써 현대의 물질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