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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국

서울, 1964년 겨울_김승옥(핵심정리)

  줄거리부터 바로 알아 볼까요?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와 부유한 대학원생인 '안'은 우연히 겨울밤 선술집에서 만납니다. '나'와 '안'은 서로 공감대를 찾지 못한 채 부질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룻밤 같이 보내 달라는 '사내'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사내'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해부용으로 병원에 팔아 버린 채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여관에 듭니다. 혼자 있기 싫다는 '사내'의 요청이 있었지만, '안'의 고집때문에 셋은 각기 다른 방에서 잠듭니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자살하고, '나'와 '안'은 허탈감 속에서 여관을 빠져 나와 헤어집니다.


  그는 붉어진 눈두덩을 안경 속에서 두어 번 끔벅거리고 나서 말했다.

  "난 우리 또래의 친구를 새로 알게 되면 꼭 꿈틀거림(현실에 부대끼면서도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얘기는 오 분도 안 돼서 끝나 버립니다."(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어려운 암담한 현실)

  > 안이 말한 '꿈틀거림'이란 '겨울밤'으로 상징된 기만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안이 '꿈틀거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현실의 억압이 강력해졌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듯하기도 했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우리 다른 얘기 합시다."

  하고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심각한 얘기를 좋아하는 이 친구를 골려 주기 위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음성을 자기가 들을 수 있는 취한 사람의 특권을 맛보고 싶어서 얘기를 시작했다.

  "평화 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등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화신 백화점 육 층의 창들 중에서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간 간의 교류 수단인 언어의 본질적 기능과는 거리가 먼, 개인만 알 수 있는 단순한 숫자 놀음으로 단절, 고독, 소외를 상징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꿈틀거림' 대신 '나만이 아는 사실'에 대해 말하자, 안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여기서 '나만이 아는 사실'이란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개인의 고유성이 사라져 버린 현대의 익명성 속에서 자신의 참된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갈망이 역설적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1964년 겨울>은 단편 소설, 모더니즘 소설입니다.

  상징적이고 암시적입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현실로부터 소외된 젊은이들의 공허하고 파편적인 삶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따.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것이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 여기서 '개미'는 도움을 청했지만 끝내 소외된 채 쓸쓸히 죽었던 사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개미를 피합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떨여져 갔다.

  "난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

  라고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 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 사내를 죽게 놓아 둔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임을 토로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소설은 세 사람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로 진정으로 교류하지 못한 채 고독하고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단절된 인간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지 못한 채 다만 개인적으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허용된 자유롱누 공간은 겨울 밤, 여관이나 술집, 밤거리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겪는 정신적 방황은 회의주의자인 '안'과 냉소적ㅇ니 '나'의 쓸데없는 말수작 같은 대화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사내'는 두 청년관느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그는 자신의 고통을 함께 할 동행을 구하지만 둘에게 외면당하고 끝내 자살에 이르고 맙니다. 이와 같은 '사내'의 죽음은 개인화된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세대의 안간형이 도래된느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와 '안'이 끝내 '사내'의 죽음에 무관심할 수 없었으며, 비록 겉으로는 냉소와 회의로 무장되었다 할지라도 내면에는 진지한 삶에 대한 갈망이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을 살펴 봅시다.


  익명화된 인물 유형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된 인물 유형들이 '나', '안', '사내' 등으로 익명화되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만남이 아니라, 익명적인 존재끼리의 비개성적이고도 무덤덤한 만남을 뜻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화된 인간관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실질적 의미가 사라진 대화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 실질적인 의미가 제거되어 버린 채 제시됨으로써, 독자들에게 오히려 역설적인 충격을 줍니다. 의미가 사라진 채 기호만 남은 이러한 대화는, 언어적인 진시리 사라져 버린 현대인의 언어 습관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상징적인 배경 설정

  1964년은 군사 독재가 시작된 해이자,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 때 겨울밤은 독재와 산업화에 따른 억압적인 분위기를 상징합니다. 이와 함께 선술집이나 여관은 정착지가 아닌 떠도는 곳으로서 모두가 고립된 상황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