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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국

오감도_이상(핵심정리)

  이 작품은 시적 화자이자 불길한 새의 표상인 까마귀가 아이들이 질주하는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처음 이작품을 접하면 상당히 난해함을 느낍니다.


  13인의 아해 모두가 '무섭다'며 질주하는 것은 공포심때문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상관없다고 한 것을 보면 아해들의 공포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공포는 곧 불안에 가까운 것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13인의 아해는 결국 불안을 앓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질주하는 행위는 자신들의 정체 모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무섭고, 무서워하는 사이가 되어 13인의 아해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는 존재요,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므로 질주하는 곳이 막다른 골목이건 뚫린 골목이건 간에 어디에서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도로로 질주해도 결국은 불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마지막 행에서도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어디를 가건 불안에 떨며 절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13인의 아해는 바로 시인 이상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모습이자 일제 시대 지식인의 자화상이요, 이상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시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1. 오감도: 새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것과 같은 상태의 도면을 일컬어 '조감도'라고 한다. 새 '조'에서 한획을 빼어 까마귀 '오'(한자를 말합니다.) 로 쓴 것은 까마귀를 통해 '불안 의식'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 시적 정황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3'이라는 숫자는 '까마귀'와 함게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13명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는 행위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3. 13인의아해는그렇게뿐이모였소. 

  : 13명의 아이들은 공포를 줌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들입니다. 막연한 실존적 불안감이 드러나 있는 부분입니다. 

   13명의 아이가 처한 실존적 상황은 '무서움(불안과 공포)'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더욱 무섭게 만드는 것은 이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존재일 뿐 아니라 스스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4. (길은뚫린골목이라도~아니하여도좋소.)

  : 애초에 주어진 시적 상황을 뒤집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1연의 내용과 연관하여 '막다른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상관없다는 것은 이들의 불안과 공포에 뚜렷한 이유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질주'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는 것은 결국 이들이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 핵심정리

갈래는 자유시, 서정시입니다.

내재율입니다.

관념적이고 상징적이며 초현실주의적입니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공포 의식과 좌절 의식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작가 이상은 초현실주의 시와 심리주의 소설 등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썼습니다. 그래서 작품이 낯설고 이상(?)합니다. (헷)



■ 작가의 의식

  이 시에는 상반된 두 개의 심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공포의 심리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려는 해방의 심리입니다. 13이라는 숫자와 아해의 상징을 통해 그들이 놓인 상황은 분위기이며, 그들의 다급한 행렬은 그만큼 위급한 처지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일제 강점기라는 암담한 시대의 어두운 내면 풍경을 생생하게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상호 불신과 맹목적인 경쟁 속에서 불안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13인의 아해는 바로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요, 이상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시는 암울한 시대를 불안과 공포로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던 일제 시대 지식인의 공포와 좌절, 그리고 희미한 희망의 불꽃이라도 잡아 보려고 하는 위기 의식을 '막다른 골목', '뚫린 골목'이라는 역설적 상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낯설게 하기'의 효과

  건물을 짓거나 안내할 때에 마치 새가 위에서 내려다 본 듯한 그림을 그려서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 주는 것이 조감도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조'를 까마귀를 의미하는 '오'로 대치하여 오감도라고 한 것부터 우울합니다. 즉 시인은 불길함을 상징하는 까마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하여 시의 감상에서 애초부터 낯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까마귀의 눈에 비치는 '13인의 아해'는 갖가지 해석을 낳고 있으나 아무튼 '13'은 서양인이 기피하는 숫자이고, 아해는 '아이'를 낯설게 표현한 것입니다. 불길한 숫자와 불길한 새의 부합을 이루는 이 시의 암울한 구도와 시어들은 전체적으로 불안감, 공포감, 혼란감을 일으키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 '13'의 의미

  이 시에서 '13'의 의미는

  1. 당시 우리 나라 도가 13도였음을 감안해서 조국을 상징

  2.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를 상징

  3. 무수의 상징

  4. '13일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로서의 상징

  5. 일종의 국외적 성격을 띤 사물을 상징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오감도'라는 제목에 나오는 까마귀의 불길함과 연관지어 볼 때, '13'이라는 숫자도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  T.M.I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시입니다. 이 시가 연재되기 시작하자 '이게 무슨 시냐, 조감도의 오기가 아니냐, 지금 독자를 우롱하자는 것이냐?' 등의 항의 엽서가 신문사에 나날이 쌓였습니다. 참 이해가 됩니다. :-) 그래서 중간에 더 이상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상은 '피해 망상이나 과대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라는 혹평부터 '최초의 모더니스트로서 현대 문학의 기수'라는 극찬에 이르기까지 극단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