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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비행운_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김애란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작가의 첫 장편 소설로 

이번에 읽은 <비행운>은 단편 소설을 묶은 책이었다.

 

어디선가 책 소개를 읽었었는데,

<비행운>이라는 제목을 

'비행'이라는 두 글자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날고 싶은 '비행'이라는 감정을 가질수록

행복하지 않은, 불행의 '비행'을 겪게되는 이야기.

 

그래서 내용이 어두울 거란 짐작은 했었다.

 

그래도 이거 너무 암울한 거 아니냐구...

 

'인생노답'이란 말 자주 썼는데,

진짜 단편마다 주인공들 인생이 다 노답이다.;;

심지어 결말도 노답이다.

확실한 결말도 아니다.

그 노답인 상황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끝난다.

 

 

당시 책의 정가는 12,000원.

 

 


그 중에 나는 <서른>을 푹 빠져 읽었다.

아무래도 '서른'이라는 나이는 '스물'이 성인되는 것보다 진짜 어른 느낌이랄까.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도 어른이 되는 걸,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거라고 표현됐던데,

역시 어른은 지독하다...

 

 

"학생 중에는 평소에 저랑 한마디도 안 하다 이따금 딸기우유나 초콜릿을 건네고 가는 여중생도, 말수 적고 속이 깊어 언제나 부모님을 걱정하는 남고생도 있었어요. 공부를 하도 한 탓에 수업 중에 코피를 쏟는 아이도, 갑자기 복도로 뛰어나가 토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요.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p.297

나도 학생들을 보면 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다.

그래서 더 인상깊었다.

나도 학생 때 저랬는데, 근거없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는데

노력하면 다 된다는,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

주인공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졸음과 싸우면서 재수를 하고,

가난한 형편에 대학을 다니기 위해 알바를 하며 남들의 2배의 시간을 들여 졸업을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여 돈을 많이 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취업은 또 마음대로 안 돼, 학원 일을 한다.

학원 일을 하며 자신을 잘 따르는 제자를 두게 된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난 전남자친구에게 이끌려 다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아...이 전남자친구도 다 사연이 있는데, 그냥 다 암울암울 답답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게 작가가 보는 서른의 현실이다...)

그리고 

다단계에서 빠져나오는데, 밑에 수많은 피라미드를 만든 후다.

자신을 잘 따르던 제자까지 끌어들인 후다.

나중에 제자의 연락을 끊고, 자신은 그곳에서 탈출하지만

제자의 자살시도와 식물인간 상태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마이갓임)

 

이걸 다 읽고 나면 

 

"겨우 내가 되겠지"가 정말 소름돋는다.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휙휙- 차들이 바람을 찢고 지나갈 때 내는 글너 소리를요. 마치 제가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왜 오락의 고수들 있잖아요. 걔네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알이 아주 커다래 보인다던데. 다가오는 모양도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하고요. 저도 그랫으면 싶어요.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넉나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높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을 들려요.

 '내가, 무얼, 더.'

 

- p.3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