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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참회록_윤동주(작품 해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떤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앙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시구 풀이

 1. 파란 녹이 낀~ 이다지도 욕될까: 식민지로 전락해 버린 우리 민족의 현실도 부끄럽고 그 속에서 망국민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도 부끄럽다는 드러나 있습니다.

 2. 만 이십사 년~ 살아왔던가.: 살아온 과거를 개월 단위로까지 제시함으로써 지나온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3. 그 때 그 ~ 고백을 했던가.: 미래의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아도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현재의 참회가 진정한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4.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하여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입니다. 진지하고 처절한 자기 성찰의 몸부림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구절입니다.

 5. 그러면 어느~속에 나타나온다.: 암흑의 시대(어느 운석)에 외로움과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희생의 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순교자적인 삶을 다짐하는 부분입니다.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둡고 불의한 시대 현실과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던 시적 화자가,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통해 윤리적인 성찰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순결한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내용의 시입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우리 사회 전체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 부끄러움은 욕된 역사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마지막 연에서 순교자적인 자기 희생의 이미지로 귀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의 해석을 자세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래의 시점(그 어느 즐거운 날)에서 현재의 참회(만 24년 1개월 무렵)를 다시금 참회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때 참회한느 내용은, 참회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를 하고도 많은 사람들은 다시금 과거의 삶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말로만 참회를 할 뿐 실천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참회는 참된 참회가 아닙니다.

 시적화자는 미래의 시점에서 뒤돌아보아도 결코 후회가 되지 않을 참된 참회를 하고 싶어하며 그런 결의가 3연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즉 3연의 내용과 2연의 내용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3연의 상황 설정을 통해서 2연의 참회가 보다 절실해지는 것입니다.

 

 현대시에서 거울이 소재로 활용된 예는 이상의 <거울>과 윤동주의 <참회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상의 <거울>에서는 거울이 현실을 거꾸로 비춘다는 속성을 이용하여 '거울 속의 자아'와 '거울 밖의 자아'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그 둘의 분열과 단절을 인식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윤동주의 <참회록>에서의 거울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역사적 유물로 설정됨으로써 시적 화자 자신은 물론 민족 공동체와 역사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어 그것들을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며,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라고 하여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다짐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