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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국

상춘곡_정극인(핵심정리)

※ 티스토리에 중세국어를 타이핑하기 힘든 관계로 원문과 표기가 다릅니다. 같은 이유로 한문은 음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녯 사람 풍류를 미찰가 맛 미찰가.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난, 산림에 뭇쳐 이셔 지락을 마랄것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앏픠 두고, 송죽 울울리예 풍월주인 되여셔라.

  엇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난 석양리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난 세우 중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난 새난 춘기를 맛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어니, 흥이애 다랄소냐. 시비예 거러 보고, 정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하야, 산일이 적적한데, 한중진미랄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구경 가쟈스라. 답청을나 오날 하고, 욕기란 내일 하새. 아참에 채산하고, 나조희 조수하새.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이 건닷 부러 녹수를 건너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새 진다. 준중이 뷔엿거단 날다려 알외여라. 소동 아해다려 주가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하야 시냇가의 호자 안자, 명사 조한 믈에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를 굽어보니, 떠노나니 도화로다. 무릉이 갓갑도다, 져 매이 긘 거인고.

  송간 세로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만락이 곳곳이 버러 잇내. 연하일휘난 금수랄 재폇난 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공명도 날 끠우고, 부귀도 날 끠우니, 청풍명월 외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단표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하네.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아무래도 고전 문학은 단어를 확인하고 넘어가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홍진'은 번거로운 세상, 속세를 뜻합니다.

 '수간모옥'이란 두어 간의 초가집을 뜻합니다.

 '울울리예'는 울창하게 우거진 속에를 뜻합니다.

 '풍월주인'이란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표현으로, 청풍명월을 자기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 즉 자연을 즐기는 사람을 뜻합니다.

 '녹양방초'란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입니다.

 '조화신공'은 조물주의 신비로운 능력입니다.

 '헌사롭다'는 야단스럽다는 뜻입니다.

 '물아일체'는 사물과 '나'가 하나가 됨을 말합니다.

 '산일'은 산 속의 하루입니다.

 '한중진미'란 한가한 가운데 느끼는 생활의 참된 맛입니다.

 '호재'는 혼자란 뜻입니다.

 '답청'은 봄에 풀을 밟고 노는 민속놀이입니다.

 '욕기'는 기수에서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보통의 시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채산'은 산채를 캐는 일입니다.

 '나조해'는 저녁에입니다.

 '조수'란 물고기를 낚는 일입니다.

 '괴여'는 발표하여입니다.

 '갈건'은 칡으로 만든 두건입니다.

 '수 노코'는 산가지를 놓고입니다. 산가지는 계산을 위하여 쓰던 가는 나뭇가지입니다.

 '미음완보'는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것을 말합니다.

 '무릉'은 무릉도원의 준말로 이상향을 말합니다.

 '유여할샤'는 넘치는구나입니다.

 '백년행락'은 평생을 즐겁게 지내는 일입니다.


  시구도 살펴보겠습니다.

  1. 홍진에 뭇친 분네~풍월주인 되여셔라.

     : 글 전체의 서사로서, 자연의 주인이 되어 자연에 묻혀 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속세를 벗어나 자연에 묻혀 고고하게 살아가려는 작가는 세속에서 멋어나 '녯 사람'의 풍류를 좇아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초가 삼간을 짓고 풍월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초가삼간, 즉 수간모옥의 배경인 '벽계수'는 자연 친화를, 송죽은 작가의 청빈한 생활을 말해 주는 것으로, 수간모옥은 세속과 탈속의 경계가 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물물마다 헌사롭다

    :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는 뜻입니다. 여기서 '야단스럽다'고 한 것은 경치가 다양하고도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입니다.


 3. 준중이 뷔엿거든~져 매이 긘 거인고.

   : 아름다운 춘경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무릉도원과 같은 선경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노래한 부분입니다. 작가가 사는 곳이 곧 선경, 이상향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신선이라 여기는 풍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4. 봉두에 급피 올나~봄빗도 유여할샤.

  : 산봉우리에 올느 작가는 그 곳에서 눈 아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안개와 빛나는 햇살에 채색된 마을과 들판의 봄 경치를 바라보며 자연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마치 구름 속에 오른 신선이나 된 듯한 기분으로 춘경을 즐기는 작가의 풍모가 나타납니다. 


 5. 이만한달 엇지하리.

  :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라는 뜻을 담은 설의적 표현입니다.



  현대어로 본문을 한번 더 살펴볼까요?

  속세에 묻힌 분들, 이내 생활 어떠한가? 옛 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세상에 남자의 몸으로 나만한 이 많건만, 산림에 묻혀 있어 (누리는) 지락을 모르는가? 작은 초가집을 맑은 시내 앞에 두고, 송죽이 울창한 속에 풍월의 주인이 되었어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과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 냈는가, 붓으로 그려 냈는가? 조물주의 신통한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 우는 새는 봄 기운을 못내 이겨 소리마다 아양이로다.

  사물과 내가 한 몸이니, 흥인들 다를쏘냐? 사립문을 (나와) 걸어 보고 정자에 앉아 보니, 천천히 거닐며 시를 읊조리며 산 속의 하루가 고요한데, 한가한 가운데 참된 맛을 알 이 없이 혼자로다.

  여보게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들을 거니는 일(들놀이)은 오늘 하고, 물놀이는 내일 하세. 아침에는 산나물 캐고, 저녁에는 낚시하세.

  갓 발효해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셈하며 먹으리라. 화창한 바람이 잠깐 불어 푸른 물 건너오니, 맑은 향은 잔에 지고 붉은 꽃은 옷에 진다. 술동이가 비엇거든 나에게 말하여라. 소동 아이더러 술집에 술을 시켜,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깨끗ㅎ나 모래 맑은 물에 잔 씻어 (술을) 부어 들고, 맑은 물을 굽어보니 떠온느 것이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산이 거기인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진달래꽃을 붙들고, 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낮아 보니, 많은 촌락이 곳곳에 벌여 있네. 노을과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친 듯. 엊그제 검던 들이 봄빛도 넘치는구나.

  공명도 나를 꺼려하고 부귀도 나를 꺼려하니, 청풍과 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가? 단표누항에 허튼 생각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냄이 이만한들 어떠리?


  갈래는 가사입니다. 서정 가사, 양반 가사입니다.

  주정적이고 서정적입니다.

  설의법, 의인법, 대구법, 직유법이 쓰였습니다.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입니다. 가사가 그렇습니다.

  봄의 경치를 즐기며 안빈낙도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가사 문학의 효시입니다. 상춘곡에서 시작하여 면앙정가, 그 후 성산별곡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작품에 대해 알아볼까요?

  가사 문학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는 상춘곡은 작가가 벼슬을 사임하고 향리인 전라도 태인으로 돌아가 만년을 지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풍류와 안빈낙도의 정신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제목인 '상춘곡'은 '봄 경치를 즐기는 노래'라는 뜻으로, 봄의 풍경 속에 몰입한 작가의 풍류 생활을 제재로 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부귀공명을 버리고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겠다는 주제를 잘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사대부층의 작품이면서도 면앙정가나 사미인곡, 속미인곡에 비해 임금에 대한 감사나 연군의 정이 나타나지 않으며,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하여 대상을 곡진하게 드러내고 있는 서정가사입니다. 


  상춘곡의 전체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사 부분입니다.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드러납니다. 아름다운 산수 자연 속에서 청풍명월의 주인이 되어 지락을 누립니다.

  다음은 본사입니다.

  봄의 아름다운 경치가 드러납니다. 봄날의 경치에 도취됩니다.

  봄의 흥취도 나옵니다. 소요음영하며 누리하는 한중진미의 생활부분에서 그렇습니다.

  이웃들에게 산수 구경을 함께하기를 권합니다.

  아름다운 봄 풍경을 구경하면서 한 잔의 술과 더불어 풍류를 즐깁니다.

  무릉도원을 생각하며 산봉우리에서 자연을 즐깁니다.

  마지막으로 결사입니다.

  단표누항에 헛된 생각하지 않으며 안빈낙도의 생활을 즐깁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에 묻혀 사는 은퇴한 관료의 생활을 읊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대자연의 주인이 된 기쁨과 여유 있는 생활 태도가 드러나고, 세속에 허덕이는 속류를 비웃듯 청아한 뜻이 낙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으며,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우아미가 창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겉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부귀와 공명이 나를 꺼려하니 자연 말고는 다른 벗이 없다.'고 해서 시적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다고 보는 경우입니다. 즉 정치에서 밀려나 은거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상황일수록 자신이 신선인 양 자부하고, 세속적 먼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생각해야 심리적 균형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산림 속에 묻혀 자연을 즐기며 안빈낙도를 추구하는 자세는 평생 관계 진출을 꿈꾸어 온 작가의 세속적 출세를 향한 욕구를 변형시켜 잠재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고전 문학은 옛 작품이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작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가사 문학의 효시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참고로 위에 가사 문학의 효시라고 쓰긴 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고전 문학을 공부하는 팁은 어휘가 어렵지만, 어휘를 공부해 놓으면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쓰입니다.

  주제 역시 작자층에 따라 주제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작품이 나오더라도, 우리가 아는 작품이랑 유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는 노노.